이번 주 뉴스위크 표지에 왕의 남자라는 이름으로 유시민이 올라왔다고 한다. 물론 영화와 비교하면 연산은 노무현이고 공길은 유시민이다. 중앙일보 계열이라 별로 읽지 않는 잡지지만 재치가 번뜩이는 비유다. 종이호랑이 연산과 만만한 노무현, 장생의 만류를 뿌리치고 연산을 택한 공길과 개미들을 뒤로 하고 열우당을 만든 유시민!!
노무현은 열우당 내부의 노골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시민을 장관으로 앉혔다. 정부가 국민들이 하나되기를 장려하는지 몰라도, 모이면 노무현 욕하기 바쁜 현 실태에서 유시민이 장관감이냐 아니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보인다. 주목해야 할 것은 '왜 유시민을 장관에 앉혔는가'이다. 그는 넘버4가 된거다.(순전히 노무현의 기준에서.) 아니 확정적 넘버3가 정확한 듯 싶다.
대권 가망성은 전혀 없어 보이지만, 스스로 대권에 대한 열망을 감추지 못하는 정동영과 달리 유시민은 그 다지 자신이 노무현의 기대주가 된 것에 그다지 기뻐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노무현에게 충성을 보내는 이유가 대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게(혹은 노무현이) 정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의 유시민의 판단은 완전히 오류다. 유시민이 노무현 정권이 들어오면서, 아니 들어오기 이전부터 노무현 지키기에 자신의 역량을 바쳤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라크 파병이나 김선일씨사건 기타 여러가지 배신을 제대로 때렸던 노무현을 지키면서 그를 찬송했던 많은 이들은 그를 비난하고 많은 감명을 받았던 그의 책까지 불태웠다. 그가 이미 무엇이 목적인지를 잃었기 때문이다.
지난 시절 권위주의 정부와 구 관습에 대한 부정과 저항은 보다 나은 세상을 펼치고 싶은 욕구,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향에야 할 목적은 망각한채 그는 일차원의 시대에 살고 있다. 0을 기준으로 지난 시절의 긍정과 부정이라는 직선위에. 노무현이 비정규직을 때려 죽이고, 농민들을 씨말려 죽이고, 자국민의 생명을 미국의 제단에 바친다 해도 그는 여전히 노무현 편이다. 적어도 노무현은 3김을 부정하고, 권위주의 역사를 부정하는 지난 시절에 대한 증오는 가지고 있으니까.
영화 '왕의 남자'에서 공길은 결국 장생에게로 돌아간다. 장생은 연산에 의해 눈이 먼 봉사가 되지만, 그들은 세상과 권력을 희롱하는 광대로 다시 돌아가 한바탕 웃어버린다. 유시민도 언젠가 1차원의 세계에서 벗어나 영화처럼 노무현에게 벗어나 시민에게로 돌아가서 환한 웃음을 지을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장생은 공길의 귀환을 받아줬지만 유시민도 그럴 수 있을까?) 이미 우리는 황우석 사태의 사기에도 무덤덤할 만큼 노무현에게 충분히 사기당했다. 눈은 이미 멀었지만 혀까지 잘리고 입마저 찢겨버리면, 더 이상 웃고 싶어도 웃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