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뻔한 드라마에서 코높고 얄상한 남자들은 이렇게 얘기를 한다.
"너를 위해서라면 난 나를 버릴 수 있어."
줄리엣도 로미오에게 이야기 한다.
"로미오. 왜 그대의 이름은 로미오인가요. 당신의 이름을 버리세요. 대신 저를 모두 가져가세요."
키야~. 얼마나 달콤한 말인가.
나도 줄리엣의 대사는 외고 다닐정도로 뻑갔었지만, 사실 그게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물론 버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많다.
철학에서도 데카르트는 자신 주위의 모든걸 의심하고 버림으로써 의심불가의 주체라는 것을 얻어냈고, 맑스는 황금의 사용가치를 버림으로써, 교환가치를 찾아냈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얻기 위하여 다른 것들을 버릴 때 가지고 싶었던 그 것이 가치를 잃을 수도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생각해보자.
로미오와 줄리엣은 둘 다 귀족이다.
로미오는 귀족이라는 신분으로 살아오면서,(그리고 또 다른 환경에 의해서) 이성관이 성립되었을 것이다.
만약 줄리엣이 귀족이 아니라면, 혹은 로미오 자신이 귀족이 아니라면 줄리엣을 사랑했을까?
아니 사랑할 수 있을까?
그 들이 비단옷을 버리고 누더기를 입고있는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는 우리 일상에서도, '너를 위해 나를 버린다던' 드라마 주인공들에게서도 보여진다.
가난한 남자가 가난한 여자를 사랑해서 그녀를 행복하게 해준다며 사회적 명성을 얻기위해 노력하고 결국엔 그 것들을 얻었지만 가난함을 잃은 남자는 여자를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
그녀에 대한 사랑은 그녀를 사랑한 자신이라는 존재가 변했기 때문에 사라질 수 밖에 없다.
사랑이 변한게 아니라 사랑했던 그 가난한 남자가 이미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주인을 잃은 사랑도 없어진다.
사랑에 절대성과 무결성을 원하는 자들은 나를 세속에 찌든 사람으로 몰아부치겠지만, 인간의 모든 행태는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그리고 그 비율은 매우!! 크다.)
파란눈과 금발을 사랑하는 남자가 조선시대에 태어났다고 가정하면, 아마 그 남자는 그 서양여자를 도깨비 보듯이 봤을 것이다.
그를 매도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그가 높은 콧날과 파란눈, 금발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의 환경들이 그 안에서 내면화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줄리엣에 대한 로미오의 요청에 대답은 전혀 로맨틱하지 않지만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줄리엣. 그대의 이름이 줄리엣이고 나의 이름은 로미오입니다. 그대를 사랑하는 자의 이름은 로미오입니다. 그대를 사랑하는 로미오라는 이름을 나는 버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로미오, 그리고 줄리엣으로 모든걸 이겨내야 할겁니다.'라고..
아마 그렇게 됐으면 아마 둘다 자살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절대 그렇게 되진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그 들이, 이런 세속적인 세상에서 흔히 보듯이, 그 싸움에 지쳐 헤어졌을 것이다라는 것이지만..
왜냐구?
어린 그들은 나이를 먹고 같이 싸워가며 서로가 변할테니까.
그럼 거기엔 로미오를 사랑한 줄리엣, 줄리엣을 사랑한 로미오는 더이상 없을테니까.
하지만 변하는 로미오를 사랑하는 줄리엣, 변하는 줄리엣을 사랑하는 로미오.
그렇게만 변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들의 주변의 것들이 아예 사라져 둘만있게 되지 않는 한불가능할 꺼다.
서로를 변하게 하는 것이 서로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이 있을테니까.
그래서 그 들은 죽음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로미오. 줄리엣.만 존재하는 공간으로 가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