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자 LG~! 싸우자 LG~! 이기자 LG~! 멋쟁이 LG~!
'지금은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 무적LG'로 구호가 바뀌었다고 하는데,
나의 기억에서 요동치는 멜로디는 전자의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Twins는 메이저리그의 미네소타 트윈즈가 아닌,
한국 프로야구의 서울 LG Twins다.
대부분의 프로구단의 구단주가 대기업소속인 대한민국 프로리그의 스포츠현실 아래, 안타깝게도 팀명도 서울 Twins도 아니고 팀응원가가 Twins가 아닌 LG로 불리는 것이 상당히 맘에 들진 않지만 20여년 해바라기 Twins사랑엔 변함없다. 허나 애정의 목표는 변함없되, 크기는 매해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다.
프로야구의 출범과 함께 태어난 몸이고, 열혈야구광이었던 삼촌의 영향아래 4살부터 야구를 봐 왔다. 어린나이에도 왠만한 야구룰은 다 알고 있었으며, 당시 서울을 연고지로 했던 MBC청룡의 팬이었다. 내 기억엔 분명히 야구 룰이라던가 야구에 관한 걸 내가 형에게 가르쳐준 걸로 기억하는데, 우리 형이 발뺌을 하니.. 우기는데 장사없다.
하지만 경기장을 찾기 시작한 때는 1990년도. 그렇다. LG트윈스로 새롭게 창단하고 MBC청룡의 프랜차이즈 스타, 백인천을 감독으로 위시하여 MBC청룡은 이루지 못한 우승을 이뤄냈던 그 해!! '히트 앤 런'. 지금까지에도 LG의 모토인 빠른야구로 돌풍을 일으켰었다. 어린나이라 혼자 경기장을 찾는다는 것은 어려웠지만, 티비 중계는 물론 라디오 중계까지도 꼭 꼭 챙겨듣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이광환감독 체제. 이때부터 LG는 자율야구라는 이름으로 많이 불리게 된다. 이전까지 프로야구가 가졌던 권위와 함께했던 딱딱한 분위기를 탈피하여 개개인의 개성을 살려주는 야구. 미국의 그 것을 처음 도입한 실험은 서용빈, 유재현, 김재현이라는 막강트리오가 등용된 3년째,94년도 에서야 그 빛을 발한다. 당시 이들 신인들과 노찬엽, 정삼흠, 김용수로 대표되는 노장, 김동수같은 걸출한 중견선수들이 만들어낸 완벽한 하모니였다. 그리고 다음해 야생마 이상훈은 시즌20승이라는 불세출의 기록을 남기게 된다.
그러나 이상훈의 미국진출의 공백을 메우지 못함과 유지현과 서용빈등 주전선수 부상, 서용빈의 징집, 노장 김용수의 불쇼등 각종 악재에 새로들어온 양준혁과 이병규의 활약은 빛을 바랬다.
그리고 역사적이었던 2002년.
야생마 이상훈이 컴백하긴 했지만, 여전히 LG의 타선은 부실했다.
신인 박용택의 활약은 놀라웠지만, 그는 알버트 푸홀스급은 아니였다.
거포의 부재는 경기를 결정짓는 힘의 부재를 불렀으며 바람 한 점에 날아갈 듯한,
위태위태한 전력으로 LG는 리그4위를 기록한다.
그리곤 기적.
그들의 투혼은 기적을 만들어냈다.
플레이오프 진출팀중 최약체소릴 전담하면서도 준플레이오프에서 플레이오프 진출.
그리고 한국시리즈 진출.
막강 화력쇼 삼성앞에 '탁콩' 엽총 LG는 골리앗 앞의 다윗이었다.
말그대로 불쌍한 야구.. 그러나 트윈스의 투혼은 꺼질 줄 몰랐다.
3,4차전 연패에도 5차전 승리로 6차전 진출.
누구도 예상치 못한 6차전에서 기선제압.. 점수차는 안정권이었고 LG는 시리즈를 7차전으로 끌고 가는 듯했다.
그러나 마무리로 나온 돌아온 야생마는 마해영과 이승엽콤비의 총알을 심장에 두번 맞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삼성팬들에겐 기가 막힌 해피엔딩이었겠지만..
나에겐.. LG의 패배보다 이상훈의 패배가 더 쓰렸던 순간이었다.
그리곤... 김성근 해임.
해태의 프랜차이즈스타 이순철의 감독취임.
유재현 강제 은퇴.
김용수코치 해임.
이상훈의 트레이드.
굴러온 돌은 박힌 돌을 빼냈다.
그리곤 내 애정도 점점 빼내더라...
언제쯤 다시 LG의 야구를 볼 마음이 생길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그리고 향후 몇년간은 아닌 것 같다.